세계 종교 탐구 <47> 예언, 신의 권능을 가장한 기만의 역사-①
지난 4월, 로마 가톨릭교회의 교황 프란치스코가 88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세간의 관심은 자연스레 차기 교황과 가톨릭의 미래에 옮겨갔고, 이를 내다보았다는 옛 예언들이 다시금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 예언들은 실제로 미래를 맞췄을까? 이번 『세계 종교 탐구』에서는 최근 언급된 몇 가지 예언들을 알아보고, 21세기인 오늘날에도 이런 예언들이 사라지지 않고 끊임없이 언급되는 현상이 방증하는 것은 무엇일지 탐구해 본다.
▣ 가톨릭의 성인, 프란치스코를 마지막 교황으로 예언하다
이번 교황의 죽음은 유독 예언과 연결되어 주목받았다. 그를 ‘마지막 교황’으로 지목한 12세기 가톨릭 성인의 예언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예언은 1590년 베네딕토회 수도사 아놀드 위옹이 베네딕토 수도회의 역사에 대한 책을 편찬하기 위해 자료를 조사하던 중 바티칸 비밀문서고에서 발견했다고 한다. 그리고 1595년 그 내용을 수록한 책이 출판되며 예언의 내용이 세상에 공개되었다.<자료1>
지금으로부터 약 900년 전인 1139년, 아일랜드의 대주교 말라키는 미래 교황에 대한 환상을 보았다며 당대 교황 다음부터 마지막 교황까지, 총 112명에 달하는 미래 교황들의 특징을 예언했다.<자료2>
예언은 2~3개의 짧은 라틴어 단어로 기록되었다. 예를 들어 109번째 차례의 교황은 263대 교황 요한 바오로 1세인데, 그에 대한 문구는 ‘달의 반쪽(Medietate Lunae)’이었다. 사람들은 그가 반달이 뜨는 날 교황으로 선출되어 다음번 반달이 뜨는 날에 사망했다며, 약 한 달간의 짧은 재임기간을 나타낸 것이라 해석했다. 111번째 교황 베네딕토 16세에 대한 문구는 ‘올리브의 영광(Gloria Olivae)’이었는데, 이번에는 베네딕토 수도회의 상징이 올리브 가지라며 예언과 연결시켰다. 사실 요한 바오로 1세의 재위 기간은 33일로, 달의 위상이 변하는 주기인 29.5일을 넘어서기 때문에 견강부회격인 사후적 해석에 불과했고, 올리브 가지는 베네딕토 수도회의 상징이 아니라 올리베타니 수도회라는 베네딕토 수도회 일부 분파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런 식으로 예언에 맞을 법한 교황들의 특징을 찾아내 예언이 들어맞았다며 환호했고, 성인의 예언이라는 권위를 등에 업은 말라키 예언의 위상은 한층 더 높아지게 되었다.
그런데 말라키 예언에서 가장 중요한 예언은 마지막 교황에 대한 예언이다. 몇 가지 단어로 표현했던 다른 교황들과 달리 마지막 교황의 차례에는 보다 길고 자세하게 예언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마지막 박해의 때에 로마교회는 로마인 베드로가 통치하고 있을 것인데, 그는 환란 중에 있는 민중을 이끌게 된다. 그 시기가 지나가면 7개의 언덕을 가진 도시(로마)는 파괴되고 두려운 신의 심판이 백성들에게 내릴 것이다. 끝.”(In persecutione extrema S.R.E. sedebit Petrus Romanus, qui pascet oues in multis tribulationibus: quibus transactis ciuitas septicollis diruetur, & Iudex tremêdus iudicabit populum suum. Finis.)
말라키의 예언대로라면 112번째 이후의 교황은 없고, 마지막 교황의 통치가 끝나면 종말이 오는 것이었다. 2013년, 예언서의 112번째 교황에 해당하는 프란치스코가 선출되자 말라키의 예언은 여느 때보다 큰 이슈로 떠올랐고, 사람들은 프란치스코가 말라키의 예언에 부합하는지를 따져보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프란치스코의 국적은 아르헨티나지만, 그의 아버지가 이탈리아 출신 철도 노동자이기 때문에 혈통적으로 로마인이며, 그가 교황명으로 선택한 프란치스코 성인의 풀네임 ‘프란치스코 디 피에트로 디 베르나르도네’에 ‘피에트로’, 즉 ‘베드로’가 들어가니, 프란치스코는 ‘로마인 베드로’에 부합한다는 해석이 있었다. 2025년, 교황이 폐렴에 걸려 위독하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말라키 예언은 또다시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교황이 죽은 후에 벌어질 상황에 따라, 지금껏 성인의 신비한 예언으로서 신봉받았던 말라키 예언의 진위가 명백히 밝혀지는 기로에 놓인 것이다. 4월 21일, 교황이 사망했고, 사람들은 말라키 예언의 실현 여부에 주목했다. 그리고 지난달 8일, 다음 교황은 그저 순조롭게 선출되었고, 종말은 오지 않았다. 말라키 예언의 기만이 드러난 순간이었다.
말라키 예언의 진위 논란은 발견 초기부터 꾸준히 제기되었다. 아놀드 위옹이 발견을 주장하기 전까지 말라키 예언의 존재를 언급한 다른 문헌과 자료가 없었다는 점, 발견 시기인 1590년 이전 교황들에 대한 예언은 비교적 정확하지만 이후에는 부정확하다는 점이 조작의 증거로 제시되었다.
진위 논란에도 불구하고 말라키의 예언은 성인의 예언이라는 권위를 빌려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 예를 들어 말라키 예언 해석서『성 말라키의 예언』의 저자 피터 반더에 따르면, 1958년 콘클라베 당시, 교황 후보였던 뉴욕의 스펠만 추기경이 배를 빌려 양을 가득 실은 채 티베르 강을 오르내리는 퍼포먼스를 벌였다는 소문이 돌았다. 성인이 예언했다는 다음 교황의 특징인 ‘양치기와 선원(Pastor et Nauta)’을 문자 그대로 실현했던 것이다. 말라키 예언은 가톨릭 백과사전에서 ‘예언’을 설명할 때도 소개되는데, ‘대표적인 예언’의 예시 중 하나로서 실렸다. 말라키 예언에 대한 설명 중, 발견 전까지 예언의 존재에 대한 아무런 언급이 없었다는 진위 논란에 대해서는 ‘바티칸 비밀보관소에 숨겨져 있었다면 그 이유가 설명된다’며 옹호하는 입장을 보였다. 또한 말라키 예언은 현재까지도 교황 선출 시기가 가까워질 때마다 언론에 반복적으로 언급되는 등, 꾸준히 대중들에게 가톨릭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컨텐츠로 기능해왔다.
자신들을 향한 대중의 관심 속에서 교황청은 말라키 예언이 공개된 이래 단 한 번도 이에 대해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그러나 마녀사냥과 종교재판이 한창이던 16~17세기의 상황을 고려하면, 미래를 예언했다며 자신들의 종말을 언급하는 이 책을 금서로 지정하거나 제재를 가하지 않았다는 점은 암묵적으로 교황청의 입장을 대변해준다. 그러나 말라키 예언이 거짓으로 드러난 지금, 그들의 침묵은 진퇴양난의 상황을 맞게 되었다.
▣ 노스트라다무스, 신의 영감에서 비롯된 예언이라 주장하다
이번 교황의 죽음으로 말라키의 예언과 함께 화제가 된 예언이 있다.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이다.<자료3>
16세기 프랑스 살롱에서 활동하던 의사이자 점성술사였던 노스트라다무스는 오늘날까지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예언가로 손꼽힌다. 노스트라다무스는 밤에 서재에서 특별한 허브를 섞은 물 한 그릇에 시선을 집중한 채 명상하면서 몇 시간을 보내곤 했는데, 이 명상은 노스트라다무스를 무아경에 빠지게 해 최면 상태와 환상을 불러일으켰고, 이것이 미래 예언의 기반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그는 1555년, “예언집(Les Prophéties)”을 출판하면서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자료4> 예언집은 한 권당 100가지 예언을 담은 10권짜리 책으로, 4행시 형식으로 총 천 개가 넘는 예언이 수록돼있다.
이번에 화제가 된 것은 예언집 5권 56번째 내용으로, “아주 나이 많은 교황의 죽음으로 알맞은 나이의 로마인이 교황으로 선출된다. 그는 교황의 권위를 약화시켰다고 하지만 그 지위를 오랫동안 유지할 것이다.”라는 구절이다. 사람들은 88세인 고령의 프란치스코 교황이 죽고 비교적 젊은 나이인 69세의 레오 14세가 선출되었다며 노스트라다무스가 이를 예언한 것이라 해석했다. 하지만 같은 내용을 두고 1996년 출판된 노스트라다무스 예언 해설책은 1978년 80세인 늙은 교황 바오로 6세가 죽고 65세의 이탈리아 출신의 요한 바오로 1세가 선출된 것을 예언한 것이라 해석했고, 더 이전에는 1939년 81세의 비오 11세가 죽고 63세의 비오 12세가 선출된 것을 예언한 것이라 해석했다. 사실 교황은 종신형이기에 나이 많은 교황이 죽고 상대적으로 젊은 사람이 다음 교황이 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노스트라다무스는 연도와 날짜를 명시하지 않았고, 그의 예언은 수 세기에 걸쳐 여러 극적인 사건에 임의로 적용되어 해석될 수 있었다. 집단적 광기와 현혹의 역사적 사례를 분석한 책『대중과 미망의 광기』의 저자 찰스 맥케이는 “고대의 신탁과 종교적인 예언을 제외하고 보면 미래를 아는 체하는 사기꾼들의 전성기는 16~17세기였다”며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은 시간으로 보나 공간으로 보나 워낙 넓은 범위에 걸치므로 몇백 년이 지나면 어디에선가는 실현될 수 밖에 없고, 조금만 머리를 쓰면 현실에서 일어난 일을 그 내용에 꿰어 맞출 수 있다”고 지적했다.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은 종종 악인의 등장, 전쟁이나 종말 등을 예언하며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고 많은 대중들을 선동해왔다. 하지만 가톨릭교회는 말라키 예언과 마찬가지로,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을 공식적으로 금지하거나 부인하지 않았다. 노스트라다무스는 성직자는 아니었지만,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서 예언집 서문에 ‘자신의 신비스러운 예언 능력이 어디까지나 하느님에게서 비롯된 영감’이라고 명시한 바 있다. 실제로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 중 많은 부분이 그리스도의 재림과 적그리스도의 출현에 관한 것이었고, 적대세력인 이슬람은 ‘마호메트를 믿는 광신도’, ‘광기에 어린 아라비아의 한 나라’, ‘인류의 공포’ 등 비판적으로 표현하며 ‘유럽을 혼돈에 빠트리고 파괴하는 존재’로 예언했다. 또 성경처럼 전쟁, 재해 등 세상의 종말을 암시하는 예언들을 굉장히 많이 했다. 이런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은 대체로 대중들에게 가톨릭교회에 대한 관심과 필요성을 불러일으켰고, 이단이나 악마로 처단되지 않은 채 현재까지도 큰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사람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그런데 앞서 소개한 두 예언과 달리, 마지막 교황의 죽음과 종말이라는 같은 내용을 예언하고도 가톨릭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예언이 있다. 바로 포르투갈 파티마에서 성모의 계시를 받았다는 ‘파티마 예언’이다.
▣ 파티마에서 성모 발현과 태양의 기적을 주장하다
가톨릭교회의 주장에 따르면, 1917년, 포르투갈의 작은 마을 파티마에 성모 마리아가 나타나 세 아이에게 3가지 비밀 예언을 남겼다고 한다. 이 예언의 내용은 교회의 통제하에 비밀로 유지되다가, 2차 세계대전(1939~1945년) 발발 후인 1941년, 세 아이 중 한 명인 루치아 수녀에 의해 처음 기록, 1942년에 두 가지 예언을 먼저 공개했는데, 그 내용은 1차 세계대전의 종전과 2차 세계대전의 발발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러시아가 회개하지 않으면 공산주의가 퍼지고 세계에 전쟁과 박해를 일으킬 것이라고 경고하는 내용도 있었는데, 이 때문에 반공주의와 교황권 강화를 도모하던 시기에 교황청이 조작 또는 선택적으로 공개한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중요한 것은 세 번째 예언이다. 루치아 수녀는 1944년에 세 번째 예언의 내용도 기록했다. 하지만 이 내용을 읽었던 교황들은 하나같이 내용을 공개하지 않기로 한다. 1965년 바오로 6세는 그 내용이 너무 충격적이어서 의자에서 굴러떨어져 실신할 정도였다고 한다. 2000년이 되어서야 그 내용이 공개됐는데, 그중에는 마지막 교황의 죽음과 종말을 암시하는 내용이 있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자료5>
<자료5> 파티마의 세 번째 예언의 내용 중 ‘교황의 죽음과 종말’을 묘사한 일러스트
파티마의 세 번째 예언은 마지막 교황의 죽음과 종말을 암시하는 내용이다. “하얀 옷을 입은 주교, 즉 교황으로 보이는 인물이 폐허가 된 도시와 시체들을 지나 산 위 십자가 아래에 도달한 뒤, 병사들에게 총과 화살에 맞아 죽는다. 이와 함께 많은 주교, 사제, 수도자, 신자들이 함께 죽는다.”
“하얀 옷을 입은 주교, 즉 교황으로 보이는 인물이 폐허가 된 도시를 지나면서 기도하고, 시체들을 지나 산 위 십자가 아래에 도달한 뒤, 병사들에게 총과 화살에 맞아 죽는다. 이와 함께 많은 주교, 사제, 수도자, 신자들이 함께 죽는다.”
공개 당시 신앙교리성 장관이던 요제프 라칭거 추기경(후의 베네딕토 16세)은 “이 환시는 20세기의 박해받는 교회, 특히 1981년 요한 바오로 2세에 총격 사건을 상징적으로 묘사한 것”이라 발표했지만, 교황의 총격 사건 외에는 다른 묘사들과 부합하는 부분이 없어 이를 신뢰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얀 옷을 입은 교황은 어느 해나 있을 것이기에, 시대를 특정하지 않고 전쟁이나 종말의 참상을 묘사하는 형식이 노스트라다무스의 다른 예언들과 다를 것 없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파티마 예언은 다른 예언과 달리 교황청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하며, 예언의 보관과 공개를 직접 통제 및 관리하고 있다. 그 차이는 “성모 마리아가 발현해 예언했다”고 주장한 것이 인정되었기 때문이다. 정말로 성모 마리아가 파티마에 나타났던 것일까?
세 아이들의 증언에 의하면 파티마의 성모는 1917년 5월 13일부터 10월 13일까지 매월 13일 여섯 번 나타났다고 하는데, 7월에 나타났다는 성모는 성모 발현이 실제 일어났다는 것을 다른 모든 사람들이 믿도록 커다란 기적을 만들어 보이겠노라 약속했다고 한다. 약속한 날인 10월 13일, 이 소식은 퍼져서 기적을 보고자하는 순례자들, 신문기자와 사진기자들을 포함해 대략 7만 명 이상이 운집했다.<자료6>
이렇게 모인 사람들 중 이날 성모를 본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일명 ‘태양의 기적’을 보았다는 사람들은 종종 나타났다. 기적을 보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 의하면, 검은 구름에 휩싸였던 하늘이 찢어지듯이 갈라지고 그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태양이 빙글빙글 회전하더니, 온갖 색깔의 광선을 사방으로 내뿜으며 지그재그로 지구를 향해 돌진하다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갔다고 한다. 1930년, 가톨릭교회는 이 사건을 “믿을 만한 가치가 있다”고 선언하여 공식적으로 파티마 성모 숭배를 허용했다. 이 소식은 많은 순례객을 끌어모아 파티마는 세계 3대 성모 발현 성지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매해 수백만 명이 파티마를 방문하고 있으며, 가톨릭 쇼핑몰에서는 파티마 성모상, 묵주, 파티마 성수<자료7>등의 기념품을 판매하며 수익을 올리고 있다. 하지만 교회는 증언 말고는 어떠한 물리적 증거나 과학적 설명은 제시하지 못했다.
천문학자들과 기상학자들은 당시 목격됐다던 태양의 움직임에 대해 “천문학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만약 그런 현상이 실제로 태양에서 발생했다면 지구 전체에서 관측되고 파국적이었을 것인데, 포르투갈 전역 및 유럽의 기상대·천문대에서 그 어떤 공식 관측 기록이 존재하지 않는다. 또 당시 현장에는 많은 언론인과 사진가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태양의 움직임이나 색상 변화를 담은 사진이나 영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다수의 물리학자, 과학자, 회의론자들이 논문 등을 통해 기적을 보았다고 느꼈을 만한 원인에 대해 과학적인 분석을 발표함으로써 “태양의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고 증명하였다.
예를 들어 벨기에의 물리학자 오귀스트 메센은 2003년 브뤼셀에서 열린 국제 심포지엄 “과학, 종교, 양심”에서 태양의 기적에 대한 분석을 발표했다. 메센은 기적을 경험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사실은 태양을 장시간 응시함으로써 발생한 망막 잔상 효과를 겪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태양을 장시간 바라보면 눈의 망막에 잔상이 남아 태양이 움직이거나 색상이 변하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그의 실험 결과도 그러했고, 실제로 종교적으로 고무된 순례자들이 태양을 응시하도록 권장받은 많은 장소에서 파티마와 유사한 ‘태양의 기적’이 관찰되었다고 보고되었다.
또 심리학적으로는 많은 사람들이 기적을 기대하며 모였기 때문에 이러한 기대감이 시각적 착시나 환상을 유발했을 수 있다며, 종교적 열광과 기대, 전염 효과가 섞인 집단 환각 또는 집단 심리적 반응 가능성도 학계에서 많이 제기되고 있다. 과학 작가 벤저민 래드포드는 “태양은 실제로 하늘에서 춤을 추지 않았다”며 “기적을 목격했다고 보고한 사람들이 거짓말을 하거나 날조하려던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 경험이 대부분 그들의 마음속에서만 일어났을 뿐이다.”라고 얘기했다.
또 망막 잔상 효과나 집단 환각이 아니라 실제로 그런 현상을 보았다면 그것은 해무리 현상과 같은 자연적 대기 현상이었을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과학 작가 스튜어트 캠벨은 1989년 기상학 저널(Journal of Meteorology)에 ‘파티마의 태양의 기적’이란 논문을 기고하여, 대기 중의 먼지, 얼음 결정, 구름 등이 태양빛을 굴절·분산시키는 등의 광학 효과를 일으켜 태양의 색과 운동이 비정상적으로 보였을 수 있다는 모델을 제시했다. 또한 영국의 기상 전문 저널리스트 폴 시몬스는 파티마의 광학 효과 중 일부는 사하라 사막의 먼지 구름에 의해 발생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2005년 더 타임즈에 기고하였다.
이러한 여러 과학적 검증에도 불구하고 가톨릭교회는 태양의 기적을 목격했다는 사람들의 증언을 사실로 인정하며 파티마의 성모 발현과 예언이 진짜라 선언했다. 하지만 사실
‘태양이 지그재그로 움직이고 지구를 향해 돌진했다’는 주장은 과학적 검증 이전에 상식선에서 불가능한 일이다. 많은 사람들이 증언한다고 해서 ‘달을 반으로 갈랐다’, ‘사람이 구름을 탔다’는 주장이 사실이 될 수 없듯이, 태양의 기적도 그러하다. 『믿음의 엔진』의 저자 루이스 월퍼트는 상식 수준을 벗어날 정도로 확연히 잘못된 믿음이라면 그에 대한 생물학적인 근거가 있기 마련인데, 이는 주로 두뇌가 오작동을 일으켜 발생한다고 한다. 그리고 종교를 설명하며 신자들은 자신이 믿는 종교에서 초자연적 힘을 지닌 신으로부터 도움을 받으려고 하기 때문에, 기적은 더 많은 광신도를 낳는다고 했다. 가톨릭은 수 세기 동안 마리아를 ‘강력한 기적을 행하는 자’로 여겨 왔으며, 예언은 ‘예언의 은사’라는 신의 권능으로 보았다. 현실에서 마리아가 나타나 예언을 했다는 기적이 실현되는 것은 그들 신앙에 대한 확신과 만족감을 증대시키는 일이었다. 신의 권능에 대한 기대는 21세기에도 비과학적인 현상을 믿게 하는 강력한 엔진이 되었다.
1981년 유고슬라비아(現 보스니아)의 메주고리예에서도 성모가 발현해 정기적으로 메시지를 전한다는 주장이 있었다. 이 소식에 순례객들이 몰려와 메주고리예는 관광, 기념품, 숙박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했고, 급기야 오늘날까지도 매일 정기적으로 성모가 발현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발현 시간이 지나치게 규칙적이고 의심스러운 진술이 많아 논란이 되고 있다. 하지만 2019년 교황청은 순례자들의 신심에 도움이 된다며 메주고리예에 대한 순례를 공식적으로 허용했다. 그러면서도 이것이 진실성을 인정하는 것은 아니라고 못박았다.
2016년에는 이탈리아 로마 북부의 한 마을에서는 성모상이 피눈물을 흘리며 예언적 메시지를 주고 있다는 주장이 있었다.<자료8> 많은 사람들은 그 성모상을 보기 위해 몰려들었고 기부금을 바치고 예배를 드렸다. 그러나 2023년, 그 피눈물이 ‘돼지피’라는 의혹이 제기되었고, 곧 수사가 착수되었다. 2025년 2월 혈액의 DNA를 분석한 결과, 성모상의 소유자이자 기적을 주장했던 여성 본인의 DNA와 일치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녀는 기부금 횡령과 사기 혐의로 기소되었지만 이미 도망쳐 행방불명 상태라고 한다. 한편, 1920년 아일랜드 템플모어에서도 성모상이 피눈물을 흘린다며 ‘템플모어의 기적’으로 많은 인기를 끌었지만, 조사 결과 타이머가 달린 장치를 사용해 ‘양의 피’가 주기적으로 솟아나도록 조작했다는 사실이 밝혀진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