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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의 후유증이 채 가시지도 않은 1955년.
서울 한복판에서 이적이 행해지고 있습니다.
박태선 장로는 곱추, 앉은뱅이, 장님 등 불구자들을 집회현장에서 완치했습니다.
화제를 일으킨 뉴스, 하나님의 집회소식이 공식적으로 세상에 알려지는 순간이었다.
1월 서울 무학장로교회집회를 시작으로 열린 하나님의 부흥집회.

순식간에 소문이 퍼지고, 3월 2일 서울 중앙방송국을 통해서도 이 소식이 보도된 것이다.
교파를 초월해 많은 교회에서 서로 다투어 하나님을 모시게 되고 집회의 행진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전국 부흥집회로 이어진다.

3월 하순 연 60만 명 이상이 참석한 서울남산집회를 시작으로 전국 9개 도시에서 열린 15번의 대집회. 몰려드는 사람들의 물결은 어느 새 500만 명 을 넘어섰다. 당시 가장 큰 건물조차 2천석을 넘지 못했던 그 시절. 집회를 하기위해서는 넓은 장소에 천막을 칠 수 밖에 없었다. 집회장소를 옮길 때 마다 천막 장비를 실은 트럭이 많게는 100여대가 움직이고 그 비용만도 1억환에 이르렀다.

끝없이 펼쳐진 천막. 발 디딜 틈 없이 빼곡히 앉은 사람들. 집회가 열리는 곳곳마다 일어나는 수많은 기사와 이적. 그것은 단지 병고침에 그쳤던 것은 아니다.
천막 안에 뽀얗게 내리는 이슬 같은 은혜 그 은혜를 맛본 사람들은 자리를 뜰 줄 모른다. 나의 기쁨 나의 소망되시며 나의 생명이 되신 주. 밤을 새워 찬송을 부르는 사람들.

1955. 3. 26. ~

전국 순회 부흥집회 (초창기 천막집회)

3월 26일 개최된 서울 남산 집회를 시작으로 영등포, 안동, 부산, 대구, 인천, 원주, 광주, 순천, 목포 등 대도시를 중심으로 1955년 한 해 동안 15회의 전국 순회 대집회가 열렸다.

순회 집회의 시작인 남산 집회는 하나님의 존재를 전국적으로 알리는 계기가 되었는데, 집회 장소는 현재 남산 식물원 자리의 드넓은 광장이었다.
당시 우리나라에는 2,000명 이상을 수용할 만한 건물이 없었기에, 천막을 치고 부흥집회 장소를 마련한 것이었다.

15회의 집회 동안 참석한 인원은 연 5백만 명 이상이 넘는 엄청난 숫자였다.

하나님께서는 천막집회를 통해 은혜를 체험한 사람이 100만이 넘기를 기다려
그 은혜가 호세아 14장 5절의 이슬 같은 은혜이며 그 은혜를 내리는 존재가 감람나무임을 증거하셨다.

찬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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