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밀 사항’으로 분류된 ‘대주교의 편지’
바티칸의 권위와 교회법 뒤에 숨은
가톨릭의 사제 보호와 조직적 은폐

알렉사 맥퍼슨(좌)은 세 살 때부터 피터 칸총 신부(우)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아래 사진은 1984년 10월 17일자로 작성된 비밀 문서로, 가톨릭 대주교의 관저(BISHOP’S RESIDENCE)에서 발송된 편지
알렉사 맥퍼슨(Alexa MacPherson)은 3살 무렵부터 6년간 보스턴의 피터 칸총(Peter Kanchong) 신부에게 학대를 당했다.
그녀는 “제가 9살 반이었을 때, 거실 소파에서 그가 저를 강간하려던 장면을 아버지가 목격하셨어요. 저에게는 거의 매일 일어나는 일이었습니다”라고 말했다.
맥퍼슨의 아버지는 곧바로 경찰에 신고했고, 가해자인 피터 칸총 신부는 미성년자에 대한 폭행 및 구타 혐의로 기소되어 1984년 8월 24일 법정 심리가 예정되었다. 하지만 맥퍼슨의 가족들이 모르는 사이 뒤에서는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법원이 신부를 도우려 한다”는 편지
가톨릭의 영향력이 강한 보스턴에서 막강한 권력을 가진 교회는 법원이 자신들 편이라고 믿었다. 당시 보스턴 대주교였던 버나드 로우는 수년간 은폐되어 있다가 뒤늦게 공개된 편지에서 “법원은 피터 신부를 돕고 교회에 대한 스캔들을 피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처리하려 하고 있다”고 썼다.
1984년에 쓴 이 편지는 보스턴 법원 심리가 끝난 지 두 달 후 작성되어 태국의 한 주교에게 보내졌다. 원래 태국 출신인 피터 칸총은 이 심리 이후 공식적인 형사 고발을 면했고, 맥퍼슨 가족과의 접촉을 피하고 심리 치료를 받는다는 조건으로 1년간 보호관찰 처분만 받았다. 이로 인해 교회에도 별다른 스캔들이 발생하지 않았다.
버나드 로우의 편지에는 피터 칸총의 ‘아동성학대’와 관련된 교회 내부의 심리 평가 내용도 명시되었다. “피고 신부는 치료에 동기부여가 없고 반응이 없다고 판단했으며, 따라서 민사 및 교회법에 따라 자신의 행동에 대한 결과에 직면해야 한다.”
그러나 이런 진단과는 달리, 버나드 로우 대주교는 피터 칸총을 즉시 태국 교구로 불러들여 달라고 간청했고, 그가 미국에 남아 있을 경우 ‘심각한 스캔들’이 발생할 수 있다고 태국 주교에게 강조했다.
당시 언론 보도에 따르면 태국 교회 당국은 그를 다시 받아들이기로 동의했지만, 피터 칸총은 소환을 무시하고 보스턴 지역에 남아 지적 장애가 있는 성인을 위한 시설에서 일자리를 얻었다.
피터 칸총은 당시 “증거가 있습니까? 증인이 있습니까?”라며 혐의를 부인했다. 하지만, 맥퍼슨은 수십 명의 신부들에게 학대를 당한 500명 이상의 피해자 중 한 명으로, 8,500만 달러의 민사 소송에서 승소했다.
이후 공개된 내부 문서에 따르면, 버나드 로우 대주교는 피터 칸총의 경우와 같은 방식으로 여러 신부들의 학대 사실을 알고도 이들을 다른 교구로 이동시킨 사실이 거듭 드러났다.
추기경이자 보스턴 대주교였던 버나드 로우는 결국 2002년 보스턴 대교구직을 사임하고 로마로 이주했으며, 이후 7년간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당의 대사제직을 맡았다. 이에 대해 생존자들은 ‘교회의 면책 특권을 더욱 강화한 조치’라고 비판했다. 그는 2017년 로마에서 사망했다.
현재 85세인 피터 칸총은 아직까지 유죄 판결을 받은 적이 없다. 그는 보스턴 교구에서 공식적인 직책을 맡을 수 없게 되었지만, 사제직은 박탈당하지 않았다.
교회가 발표한 피고인 사제 명단에는 그의 사건이 ‘미해결’로 표시되어 있으며, 유죄 또는 무죄 여부에 대한 최종 결정이 내려지지 않았고, 단지 그가 ‘무단 결석’했다고만 적혀 있다. 맥퍼슨은 그를 파면시키기 위해 수년간 노력해왔지만, 태국 교구나 바티칸만이 그 권한을 갖고 있다는 이유로 교회는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2002년, 보스턴에서 대규모 성학대 사건이 드러나며 수백 명의 피해자들이 침묵을 깨고 나섰다. 이들의 변호인단은 수십 년간 은폐되어 온 교회 내부 기록을 공개하기 위해 법정에서 치열한 싸움을 벌였다. 교회 측은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는 미국 수정헌법 제1조를 근거로 이러한 문서들을 비공개로 유지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공개를 명령하며 교회 대응에 중대한 전환점을 만들었다.
그 결과, 맥퍼슨의 아버지가 처음 경찰에 신고한 지 18년이 지난 2002년이 되어서야 대주교의 편지가 공개되었다. 해당 판결은 가톨릭교회가 공개하라는 명령을 받은 수천 쪽 분량의 문서 중 하나였다.
여전히 비밀은 남아 있다
맥퍼슨의 변호사인 미첼 가라베디언은 영화 ‘스포트라이트’에서 보스턴 성학대 스캔들을 다룬 인물로, 교회가 비밀을 유지하는 데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문서를 얻으려면 법원에서 소송을 해야 한다. 실제로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2002년 스캔들 폭로 이후 수십 개국에서 이와 유사한 사례가 눈사태처럼 쏟아졌지만, 그는 전 세계 가톨릭교회에서 여전히 불법 행위에 대한 비밀이 숨겨져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피해자 맥퍼슨은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는 약탈적인 사제들과 이를 은폐한 사람들을 넘겨주고, 일반 법정에서 그들에게 책임을 지우며, 더 이상 그들을 보호하거나 숨기지 않는 것이다”라며 “교회가 아는 모든 것을 공개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그녀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장례식과 후임자 선출을 준비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이 고통스러웠다고 전했다.
“학대를 은폐한 인사들이 바티칸의 권위와 교회법 뒤에 숨은 채 여전히 보호받고 있는 상황에서 그 인물들을 기리는 장례식이 거행되는 것은 마치 학대가 정당화되는 듯한 느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