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종교 탐구 <46>콩고, 르완다 집단학살, 신이 허락한 살육인가-②
▣ 성당은 도살장이었다
“사람들은 매일 미사에 와서 기도한 다음 살인을 저지르러 나갔습니다(People Came to Mass Each Day to Pray, Then They Went Out to Kill)” 이것은 한 생존자의 증언이다.(Timothy Longman,『Christianity and Genocide in Rwanda』,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9., p.7.) 르완다 국민의 대부분은 기독교 신자다. 르완다 학살에 협조한 주민의 대부분이 ‘투치족 학살은 하느님의 뜻에 따라서 한 것이다’라고 여겼고, 교회는 관리들, 정치인들, 선전가들이 그 학살이 실제로 하느님의 뜻에 부합한다고 주장할 수 있도록 허락했다. 일반 신자는 물론 가톨릭 성직자들도 직접 학살에 가담했다. 생존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피해자들 중 다수가 성직자, 신부, 수녀의 손에 직접 살해당했다.(“Pope Francis asks for forgiveness for church’s role in Rwanda genocide“, The Guardian, March 20, 2017.) 신자들은 성당만큼은 후투족의 공격을 막아줄 것으로 믿었지만, 오히려 성당은 사람들을 모아놓고 한꺼번에 죽일 수 있는 킬링필드 역할을 했다.<자료7> 사살대는 피난처를 포위하고 교회당 창문으로 수류탄을 던지고 소총으로 군중을 향해 총을 쏘며 생존자들을 마체테, 전정 갈고리, 칼 등으로 학살했다. 아프리칸 라이츠(African Rights)는 ‘다른 어느 곳보다 교회와 교구에서 더 많은 르완다 시민이 사망했다’고 얘기했다.

<자료7> 집단학살의 참상을 전시해놓은 르완다의 냐마타 성당 제노사이드 기념관
성당 의자에 집단학살 희생자의 옷들이 셀 수 없이 잔뜩 쌓여 있다. 신자들은 성당만큼은 후투족의 공격을 막아줄 것으로 믿고 성당으로 피신했지만, 오히려 성당은 사람들을 모아놓고 한꺼번에 죽일 수 있는 킬링필드 역할을 했다. (출처: 이코노미스트, VOA Nesw)
예를 들어 니앙게 성당의 아타나세 세롬바 신부는<자료8> 약 2000명의 투치족 사람들을 니앙게 성당으로 피난시켰다. 그중에는 자신의 교구 신도들도 많았다. 그다음 그는 후투족 민병대를 불러들였고 그들은 성당 안으로 수류탄을 던지고 방화를 시도했다. 불이 생각만큼 번지지 않자 세롬바 신부는 불도저 기사에게 성당을 언제 붕괴시킬지, 성당 구조에서 가장 약한 지점이 어디인지 상세히 설명하며 성당을 밀어버리라 지시했다. 이로써 성당에 갇혀있던 사람들은 남김없이 모두 죽게 되었고, 강물이 핏빛으로 변했다. 은유적인 표현만이 아니었다. 세롬바 신부는 이 사건으로 르완다전범국제재판소(ICTR)에서 1심에서 15년형을(Case No. ICTR-2001-66-I), 항소심에서 종신형을(Case No. ICTR-2001-66-A) 선고받았다. 에마누엘 루쿤도 신부는<자료8> 투치족 여성들을 납치 및 살해, 강간한 혐의로 ICTR에서 23년형(Case No. ICTR-2001-70-A)을 선고받았으며, 거트루드 수녀와 마리아 키지토 수녀는<자료8> 약 7,000명의 투치족이 피신해 있던 소부(Sovu) 수녀원에서 민병대의 학살을 도운 혐의로, 특히 휘발유를 제공해 차고에 숨어 있던 약 500명에게 불을 지르게 한 사실이 인정되어, 2001년 벨기에 법원에서 각각 15년형과 12년형을 선고받았다.(“Rwandan nuns jailed for 1994 massacre”, CNN, Jun 8. 2001.) 또 테오피스터 무카키비비 수녀는 병원에 피신한 투치족을 민병대에 넘기고, 유아를 변소에 버린 혐의로 30년형을 선고받았으며(“Rwandan nun sentenced to 30 years for genocide”, ABC News, Nov 11. 2006)이 외에도 다수의 성직자들이 전범 재판에서 유죄를 받았다. 아프리카 인권 단체 아프리칸 라이츠에 의하면 전범 혐의를 받고 있는 사제의 수가 최소 36명이 더 있지만,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교황청의 보호 아래 유럽으로 도피했다고 한다.
이처럼 가톨릭교회는 학살에만 가담한 것이 아니라 학살 이후에도 촘촘한 조직망을 이용해 전범 사제들을 유럽으로 도피시켰다.(“Pope Francis asks for forgiveness for church’s role in Rwanda genocide“, The Guardian, March 20, 2017.) 학살 사제들은 바티칸의 국제자선단체기구인 카리타스 인터내셔널의 도움을 받아 유럽행 비행기표를 제공받아 이탈리아, 프랑스, 벨기에 등의 유럽으로 탈출하였고, 학살자들은 손에서 피를 씻고 사제직을 이어갔다. 교황청은 또한 ‘민족말살’이란 험악한 표현을 거부하며, ‘골육상쟁’이란 표현이 더 적합하다고 우겨대는 촌극을 벌이기도 했다.
르완다 정부는 학살당한 사람 다수가 은신을 위해 찾았던 성당에서 살해당했다며 가톨릭교회의 공식적인 사과를 오랫동안 요구해왔다. 그러나 교황청은 기독교인들이 집단학살에 가담한 것은 ‘개인의 죄악 때문’이라고 그들을 비난했고, ‘교회의 제도적 책임’은 부인하며 공식적인 사과를 주저해왔다.(Timothy Longman,『Christianity and Genocide in Rwanda』,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9., p.7.)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자료9> 1996년 발표한 서한에서 “집단학살 가담은 교회의 가르침에 어긋나므로, 학살에 가담한 다른 기독교인들은 개인적으로 책임이 있지만, 교회 전체는 책임이 없다”고 명시했다. 또한 “교회 자체는 그 구성원들이 복음의 법에 반해 행동한 잘못에 대해 책임을 질 수 없다.”고 덧붙였다.(“Pope Says Church Is Not to Blame in Rwanda,” New York Times, March 21, 1996, p. A3)

<자료9> 전 교황 요한 바오로2세
요한 바오로 2세는 르완다 학살의 책임이 학살에 가담한 개인에게 있고, 교회는 없다고 주장했다. 한편, 요한 바오로2세는 가톨릭에서 성인으로 추앙받고 있다.(출처: NBC News)
심지어 르완다 대학살 당시 교회를 비판하며 유명해졌던 앙드레 시보마나 신부도 “저는 로마 가톨릭교회가 집단학살에 가담했다고 일반화하는 표현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이 교회는 무엇보다도 신성한 기관이며 구원의 장소입니다. 문제가 되는 것은 교회 자체가 아니라 교회 구성원들입니다.”며 비슷한 입장을 밝혔다.(Sibomana, Andre,『CHope for Rwanda : conversations with Laure Guilbert and Hervé Deguine』, Pluto Press, 1999., p.123.)
사과에 침묵으로 일관하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1998년 4월 23일 침묵을 깨고 르완다 공화국의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냈다. 하지만 그 편지에는 희생자들에 대한 어떠한 유감이나 사과의 내용이 단 한마디도 담겨있지 않았고, 후투족 학살자들의 사형을 연기해 달라고 요구하였다.(미셀 옹프레,『무신학의 탄생』, 모티브북, 2006., p.271.)
2016년 르완다 가톨릭교회는 ‘일부 교회 구성원’들이 학살로 이어진 인종 간 증오를 부추겼다고 인정했으나, 르완다 정부는 이 사과가 미흡하다며 수용하지 않았다. 이에 2017년에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직접 사과에 나섰지만 “르완다 대학살 때 ‘교회와 교회 구성원들이 저지른 죄와 결점’에 대해 다시 ‘신의 용서’를 구한다”고 얘기하며 ‘교회 구성원들’이 저지른 죄라는 표현은 달라지지 않았다. 르완다 대학살을 다룬 책『내일 우리 가족이 죽게 될 거라는 걸, 제발 전해주세요』의 저자 필립 고레비치는 “교황의 성명은 어조가 변화했을 뿐 사과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가톨릭의 주장대로 집단학살 가담은 교회의 가르침에 어긋나며, 일부 교회 구성원들의 잘못이었을까?
▣ 르완다 민족 갈등을 조장한 것은 기독교다
분란의 씨앗은 후투족과 투치족 사이의 갈등이었다. 르완다 국민을 투치족, 후투족으로 갈라놓지 않았다면 이러한 참극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제노사이드 백과사전에서는 교회가 후투족과 투치족 간의 정체성 분열을 조장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며 ‘함족 가설’을 소개했다. 1880년대 후반 로마 가톨릭 선교사들은 르완다에 와서 소위 ‘함족 기원설’을 주장했다. 함족 가설은 ‘투치족은 히브리 성경에 나오는 노아의 아들 함의 후손이며, 사하라 이남 토착 아프리카 출신이 아니라 우월한 이집트 기원이다’라는 주장이다.<자료10>

<자료10> 함족 가설이 반영된 아프리카 주요 민족 집단 도식 지도
사하라 이남은 토착 원주민이, 이북엔 이집트에서 온
함족이 분포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출처: 펜실베니아 박물관)
이는 ‘아프리카 문명은 아프리카인의 것이 아니라 ‘백인 계통의 이주자’에 의해 전해졌다’는 서양의 인종주의적 인류학의 산물이기도 했다. 선교사들은 투치족이 후투족보다 코가 높고 키가 크다며 외형적으로 백인과 닮았다는 이유로<자료11> ‘우월한 지배계급’, 후투족은 ‘하위 토착민’이라는 위계 구도를 만들었고, 함족 가설은 이를 정당화했다.

<자료11> 외형으로 후투족, 투치족을 구분하는 사진
선교사들은 투치족이 후투족보다 코가 높고 키가 크다는 등 외형적으로 백인과 닮았다는 이유로
투치족은 ‘우월한 지배계급’, 후투족은 ‘하위 토착민’이라는 위계 구도를 만들었고, 함족 가설은 이를 정당화했다.
가톨릭 선교사와 벨기에 식민관리는 함족 가설을 지침으로 삼고 민족 신분증을 발급하는 등 인종에 따라 르완다 사회를 철저하게 개편했다. 르완다 초대 주교 몬시뇰 레옹 클라스가 후투족의 공민권을 박탈하고 우수한 혈통을 타고난 투치족의 전통적인 지배권을 강화하는데 앞장섰다. 1931년 로마 가톨릭교회는 말을 잘 듣지 않는 기존의 르완다 왕을 폐위하고 호락호락할 것 같은 인물인 무타라 루다히그와를 새 왕으로 세웠다. 무타라는 즉시 가톨릭으로 개종했고 전국 차원의 세례 열풍을 일으켰다. 그 결과 르완다는 아프리카에서 가톨릭교도가 가장 많은 국가로 탈바꿈했다. 가톨릭계 학교들은 드러내놓고 투치족을 편애하는 차별 정책을 실시했으며 투치족은 행정과 정치 분야와 관련된 직업을 독차지했다. 교회는 르완다의 주요 사회 기관이 되었고, 그들은 자신들이 원했던 르완다, 즉 중앙집권적이고, 통제하기 쉽고, 효율적이며, 비국교도를 용납하지 않고, 가톨릭적인 나라를 만들어냈다.
보스턴 대학교에서 정치학과 국제관계학 교수 티모시 롱맨은 기독교가 아니었다면 르완다 제노사이드는 일어날 수 없었을 것이라고 얘기한다. 그는 캐나다의 홀로코스트 역사가 도리스 버겐의 설명을 소개하고, 이것은 르완다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도리스 버겐은 “기독교가 지도자들에게 학살을 직접 명령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대중이 학살을 이해하고 용인할 수 있도록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기독교의 반유대주의가 홀로코스트의 유일한 요인은 아니었지만, 그것이 없었다면 홀로코스트는 일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라고 썼다. 이는 곧 기독교의 함족 신화를 바탕으로한 갈등 조장이 아니었다면 르완다 제노사이드는 일어날 수 없었다는 것이었다.
티모시 롱맨은 르완다에서 발생한 투치족 학살에 가톨릭교회가 깊이 연루되어 있음을 밝히는 논문『교회 정치와 르완다의 대량 학살』에서 대량 학살의 신학에 대해 다음과 같이 결론 지었다. “르완다에서 교회가 저지른 만행을 들은 기독교인들은 ‘르완다에서는 기독교가 제대로 자리 잡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르완다 기독교만의 문제라고 넘기려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런 반응은 십자군 전쟁부터 반복된, 유대인 박해에 이르기까지, 신의 이름으로 자행된 오랜 기독교 폭력의 역사를 외면하는 것이며, 아프리카에서 기독교가 식민지 지배 속에서 자리잡은 방식 또한 외면하는 것이다.
선교사들은 권위와 권력 구조에 대한 복종과 존중을 강조했다. 기독교인들은 신앙의 규율은 물론 사회적 상위자들과 정부의 명령을 엄격히 따르도록 교육받았다. 르완다의 선교사들이 몸소 드러냄으로써 기독교는 영향력을 위해서라면 마키아벨리식 조작(권력 유지를 위해 거짓말, 기만, 잔인함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정치적 술수나 조작)을 용인하고, 민족적 차별도 받아들인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르완다가 독립한 이후에도 기독교는 여전히 권위와 복종을 강조하는 율법주의적 종교로 남아 있었고, 정치적 술수와 차별을 계속해서 실행했다. 교회가 공개적으로 “민족적 증오를 키우고 학살을 하라”는 설교를 하지는 않았지만, ‘이웃을 사랑하라’는 자비의 가르침은 결코 그들의 중심의 메시지가 아니었다. 오히려 학살을 지지하는 것이 신자들이 배워온 신학과 일치하는 행위가 되었다.” 교회는 학살을 가르친 적이 없다고 주장하지만 교회가 행해온 역사적 사실들과 르완다에서의 행태에 비추어보면, 학살을 지지하는 것이 그들의 가르침이라는 것이었다.
제노사이드를 조장하는 심리적 원리에는 ‘타자화’, ‘비인간화’가 있다. ‘타자화’는 특정 집단을 ‘우리’와 다른 존재, 즉 외부자나 위협으로 인식하게 만드는 사고 방식이며, ‘비인간화’는 타자화된 집단을 바퀴벌레, 해충, 악마 등 인간으로 여기지 않는 심리적 왜곡이다. 콩고의 경우 선교사들은 원주민들은 ‘게으르고 타락한 이교도’로 묘사했고, 강제 노동과 신체 절단조차 ‘문명화 과정의 필요악’이라 여겼다. 르완다에서는 투치족을 바퀴벌레, 쓰레기, 뱀 등으로 지칭했고, 가해자들은 실제로 그렇게 여겼다고 한다. 『행동; 인간의 최선의 행동과 최악의 행동에 관한 모든 것』의 저자 로버트 새폴스키는 ‘타자화’와 ‘비인간화’가 ‘증오의 선동가들의 도구’라고 했다. 실제로 대규모 살육에는 언제나 ‘타자화’와 ‘비인간화’가 관찰된다. 1095년 교황 우르바누스 2세는 십자군 원정을 선동하는 연설에서 무슬림들을 ‘악마의 무리’, ‘사탄의 씨앗’이라 표현했고, 십자군은 악마의 무리를 처단한다며 닥치는 대로 살육을 저질렀다. 또 기독교는 유대인을 예로부터 ‘신을 죽인 민족’, ‘사탄의 하수인’, ‘쥐’, ‘바이러스’ 등으로 표현해 왔고, 유럽에 만연해진 반유대주의 사상에 포그롬, 홀로코스트 등 유대인들은 곳곳에서 집단학살의 대상이 되었다. 중세 시대 때는 사탄의 협력자인 마녀를 처단한다며 전 유럽에 광기 어린 살육이 일어나기도 했다.
영국의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은 “잔혹한 사람은 잔혹한 신을 믿고, 그 믿음을 자신의 잔혹함을 정당화하는 데 사용한다.”고 얘기했다. 작년 5월, 르완다 대학살 중 세롬바 신부와 함께 니앙게 성당 집단학살의 주범이었던 전직 경찰 간부 풀전스 카이셰마가 수배 22년 만에 법정에 섰다. 그는 성당을 불태우라고 지시하고 방화에 사용할 휘발유를 조달 및 배포한 혐의를 받고 있지만, 혐의를 부인하며 도망다니다 남아공에서 체포되었다. 그는 두 권의 책을 법원에 들고왔는데, 그것은 ‘성경’과 ‘예수님 먼저’라는 기독교 서적이었다. 그는 그 책들이 자신의 무죄를 입증이라도 하는 양 자신있게 한 권씩 들어올려 보여주었다.<자료12> 하지만 그 믿음이 잔혹함을 정당화하지는 못함을 알아야 한다.
지난해 9월, 벨기에를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낙태를 반대했던 보두앵 국왕의 생전 행실을 칭찬하며 로마로 돌아가는 즉시 보두앵의 시복 절차에 착수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이 소식이 알려지자 벨기에 브뤼셀에서는 시위가 일어났고, 3주 내에 500여 명의 가톨릭 신자들이 세례를 취소했다. 보두앵 국왕은 1960년 6월 콩고 독립 당시 콩고를 처음 식민지화한 레오폴드 2세에 대해 ‘정복자’가 아니라 ‘(문명을 전파한)시빌라이저’라 칭했고, 임기가 끝날 때까지 사과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비판가들은 “낙태 반대만으로 성인이 되기에 충분하다면, 천국에는 성인답지 못한 다양한 행동을 한 사람들이 많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일침을 놓았다.
벨기에의 저널리스트 톰 은다히로는 오히려 가톨릭교회가 보두앵을 거룩하게 추대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얘기했다. 가톨릭교회는 오랫동안 세계의 인종적 불평등을 공모해 온 단체기 때문에, 벨기에 식민지 역사를 피로 물들인 인물을 찬양하는 보두앵을 거룩하게 추대하는 것이 당연하다며 비꼰 것이다. 그러면서 아마도 바티칸이 성인의 기준을 새롭게 정의해야 할 때가 되었다고 얘기했다.
그는 또한 ‘생명 보호를 이유로 낙태는 반대하면서 1,000만 명의 생명을 앗아간 콩고의 대량학살은 문명화라 정당화하는 것’을 두고 ‘선택적 도덕성’, ‘공허한 거룩함’이라 비판했다. 그리고는 “이것이 가톨릭교회의 도덕적 나침반이라면, 부디 그 끝이 천국을 가리키고 있지는 않길 바란다”며 칼럼을 마무리한다.
그 나침반이 가리키는 방향은 콩고와 르완다에서 일어난 끔찍한 학살들이 명확히 알려준다. 잔혹함을 조장하고 악을 정당화하는 잘못된 정신을 심어주는 신은 인간을 구원하는 신일까 인간을 망가뜨리는 악마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