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변화, 이제는 물가의 핵심 변수
# ‘기후플레이션’으로 인한 물가 상승
지구의 기온이 올라가면서, 우리 밥상 위 풍경도 급격히 변하고 있다. 이른바 ‘기후플레이션(climateflation)’, 즉 기후변화로 인한 먹거리 물가 상승 현상이 세계 곳곳에서 반복되고 있다.
국내에서도 무, 배추, 당근 등 주요 겨울 채소의 가격이 연일 고공행진 중이다. 양배추와 배추는 한 포기에 6천 원 안팎으로, 1년 전보다 약 2천 원이 올랐다. 무 한 개 가격도 3천 원으로 전년 대비 1천 원 상승했다.
지난해 늦더위 탓에 정식(온상에서 기른 모종을 밭에 내어다 제대로 심는 일)과 파종 시기가 뒤로 밀리면서 작물 생육이 부진했고, 이로 인해 수확량이 크게 줄어든 결과다.
여름에는 강원도 고랭지에서 생산되는 배추가 폭염에 녹아내리면서 한때 배춧값이 포기당 1만 원까지 치솟기도 했다. 과일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해 봄, 서리 피해로 사과와 배 수확량이 30% 가까이 급감하면서 가격이 전년의 두 배까지 치솟았다.
기후 위기는 바다도 뒤흔들고 있다. 수온 상승과 남획이 겹치며 국민 생선이라 불리던 명태는 자취를 감췄고, 오징어 어획량도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2000년대 연평균 20만 톤에 달하던 오징어는 지난해 1만 3천 500톤까지 떨어졌다. 명태는 이미 2019년부터 국내 어획이 전면 금지돼 러시아산 수입에 의존하고 있으며, 오징어 한 마리는 서울에서 1만 1천 원을 넘기며 ‘금징어’라는 별칭까지 얻었다.
냉장 고등어, 마른 멸치 등 대중적인 어종도 가격이 크게 올랐다. 지난해 고등어 어획량은 17.4%, 갈치는 26.6% 감소했고, 연근해 전체 어획량도 11.6% 줄었다.
바닷물 온도가 높아지면서 양식장 피해도 커져, 2023년 한 해에만 고수온으로 인한 양식업 피해액은 1,430억 원에 달했다. 이는 관련 통계를 집계한 이래 가장 큰 피해 규모다.
이러한 ‘기후플레이션’ 현상은 비단 국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세계 최대 커피 생산국인 브라질과 베트남은 가뭄으로 수확이 부진했고, 이에 따라 국제 아라비카 커피 원두 가격은 파운드당 4달러를 넘어섰다. 이는 역대 최고 수준이다.
초콜릿의 원료인 코코아 역시 가나와 코트디부아르의 이상기후 여파로 공급이 줄면서 국제 가격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러한 원재료 가격 상승은 스타벅스, 폴바셋 등 국내 커피전문점의 가격 인상으로 이어졌고, 제과업체들도 초콜릿 제품 가격을 줄줄이 올리고 있다.
일부 식품업체는 제품 가격은 유지한 채 용량을 줄이는 ‘슈링크플레이션(shrinkflation)’ 전략까지 동원하며 소비자의 부담은 더욱 커지고 있다.
# 물가 상승률은 더욱 커질 듯
전문가들은 기후 변화와 원자재 가격 상승, 공급망 교란 등이 맞물리며 당분간 먹거리 물가가 안정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향후 기온이 지금보다 더 오르게 되면, 지금의 기후플레이션은 시작에 불과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하지만 아직도 일부에서는 경제 논리에 기대어 온난화 자체를 부정하거나, 온실가스 감축의 속도를 늦추려는 움직임도 존재한다.
지구의 온도는 결국 우리의 일상을, 그리고 생존의 기준마저 바꿔놓고 있다.
이제는 단순히 ‘비싼 채솟값’의 문제가 아니라, 기후 위기 시대에 우리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